자유를 택한 순간, 노동이 따라왔다
‘디지털 노마드’. 낯설고도 멋있게 들리던 단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낭만, 그리고 더 나은 삶의 방식.
많은 이들이 그 단어에 이끌려 기존의 일상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정된 출퇴근 시간, 반복되는 회의, 의미 없는 일정에 지쳐 노트북 하나 들고 자유를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자유의 이면엔 끝없는 일, 끊임없는 책임, 자기관리라는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현실은 ‘노마드’가 아니라 ‘노가다’에 가까웠다.
시간은 자유지만, 노동은 더 많았다
처음엔 설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내가 고른 장소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일상. 하지만 곧 느꼈다. ‘자유롭게 일한다’는 말은 곧 쉬지 않고 스스로를 일에 내몰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하루가 무너졌고, 오후까지 집중하지 못하면 야근이 당연해졌다. 명확한 출퇴근이 없다는 건, 끝나는 시간도 없다는 말이었다. 프로젝트 일정이 몰릴 땐 밤을 새우고, 일이 끊기면 불안 속에 자기계발이라는 또 다른 노동을 이어가야 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도 수입은 들쑥날쑥했고, 밀린 대금은 정산일까지 가물가물했다. 정기 월급이 없다는 건 늘 ‘다음 달’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삶의 반복. 멀리 나가지 않아도, 일상이 ‘디지털 노가다’ 그 자체였다.
혼자 일하고, 혼자 버티고, 혼자 책임진다
물리적 고됨보다 더 힘든 건 정서적인 고립감이었다.
동료와 잡담을 나눌 시간도, 퇴근길에 한숨 돌릴 공간도 없었다. 문제에 부딪히면 해결도 나 혼자 해야 했고, 피드백을 줄 사람도, 칭찬해줄 사람도 없었다. 일은 쌓이고 시간은 줄어드는데, 누구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정해진 구조 안에서 보호받던 직장인의 삶과 달리, 이곳은 철저히 혼자 버텨야 하는 구조였다. 자유의 공간에는 책임만큼이나 외로움도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기 통제력은 필수가 되었고, 강제로라도 루틴을 만들지 않으면 하루는 금방 무너졌다.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이 점점 무게를 더해갔다.
그럼에도 이 길을 걷는 이유
그런데도 왜 계속 이 길을 택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단순한 ‘자유’ 때문이 아니다. 내 삶의 리듬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자율성, 그 안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 그리고 어느 순간 작게나마 만들어낸 성취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노가다 같은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나는 일에 대한 태도도,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고 있었다. 누가 정해준 인생이 아니라, 시행착오 끝에 내가 만들어가는 삶. 그 과정은 고단하지만, 동시에 가장 생생한 삶의 증거이기도 했다.
우리는 더는 출장을 떠나거나 낯선 도시로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이 방식은 바로 지금, 내 자리에서 시작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디지털 노마드의 진짜 이름은, 어쩌면 디지털 노가다일지도 모른다.
마치며
노마드를 꿈꾸며 시작한 삶. 하지만 정작 매일을 살아보면 그 현실은 낭만보다는 노동에 가깝다. 스스로를 관리하고, 책임지고, 외로움까지 감당해야 하는 이 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 분명히 배워가는 것들이 있다. 삶을 선택하는 힘, 시간을 다루는 기술, 나 자신을 밀어붙이는 끈기.
디지털 노마드는 멀리 떠나는 삶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고정된 구조를 벗어나 ‘일과 삶을 다시 짜는 사람’이 디지털 노마드다. 그리고 그 여정은 결코 낭만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노가다 같은 하루가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가 의미를 갖는다.
디지털 노마드: 일과 삶의 자유를 누리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